밝고 화려한 세상 속에서도 외로움과 죽음은 곁에 있지만...

 

 나는 때론 외롭고, 못난 행동을 많이도 했으며, 누군가를 원망하며 살아간다. 미워하는 사람도 있고 복수심이라는 것을 나쁜줄 알면서도 버리지 못했다. 좋았던 사람이 싫어지기도 하고, 별 것 아닌 행동과 말 하나에 그 사람에게 불행이 찾아오길 바랬던 적도 있다. 밖에선 나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주는데, 정작 이것이 내 실체다.

 그렇지만 내가 하지 않는 생각도 하나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누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무서운 생각을 해본 적도 있다. 사실 이 말에도 어폐는 있다. 죽었으면 이라는 표현은 누군가가 죽었을 때, 통쾌함을 느낀다기 보다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저 정확하다. 하지만 말을 할 때는 '죽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표현이 된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이 매우 잘못된 것이란 것을 이젠 안다.

 사람의 문제는 누군가가 죽는다고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잘못이 어떠한 것이든, 죽어야지만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원인이 타인에게 있는 것과 무관하게, 죽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에게도 생각에 문제가 없는지 되돌아봐야만 한다. 잔인하지만 그게 사실이다. 왜 나는 그 사람이 죽어야할만큼의 잘못을 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 사람이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죽어야지만 해결될 수 있다고 우리 사회는 인식을 만들었는가? 죽음이 어떻게 자신의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하는 수단이 되어버린 것인가. 질문이 너무 많다.

삶이 주어진 인간은 살아갈 책무가 있다.

 나는 어떠한 사람이,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죽음만이 그 댓가를 치뤄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그런 사회는 잘못된 사회라고 생각한다. 죽음은 결코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그저 문제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 자체가 중단될 뿐이다. 해결이 되는 것과 중도가 그만두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자꾸만 이 사실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우리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좀 더 솔직해지고, 담담해져야 한다. 뻔뻔해지자는 것이 아니다. 잘못이 발생했다면 그에 따라 비판과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처벌이 끝난 사람에 대해선 그 사람이 다시 무언가를 한다고 하였을 때, 물론 과거의 원죄에 대해 마음의 거부감이 남아있지만, 동시에 그 사람에게 기회를 줄 수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언젠가 반드시. 무언가 크고작은 실수와 잘못을 하게될 우리에게도 살아나갈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영원히 죽을 떄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없는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비난하는 사람은, 그 화살이 자신에게 겨누어졌을 때 되물어볼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의 비난과 비판은 감당할 수 있는가 말이다.

  절대로 죽음으로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얼마만큼 책임을 느끼더라도, 누군가가 당신이 죽어야 한다고 비난하더라도, 그 모든 것에 죽음으로만 해결될만큼의 권위와 정당성은 없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만 한다. 잘못이 발생하고, 그 잘못에 죽음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책임을 지고, 다시 살아간다.

그게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20.7.10.금

누군가를 추모하며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