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모르겠으면 말로 물어봐야 하는 것과 비슷한 셈

 

 -계속

 사건은 오늘 아침이었다. 어제 친한 사람들과 치킨과 맥주, 아이스크림까지 먹은 것이 화근이었는지 계속해서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화장실이 가고 싶어 새벽에 잠이 깰 정도였으니, 그 여파가 아침까지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도 청소하시는 그분과의 인연은 놀랍게도 정상작동을 하였다. 4층의 화장실을 가려고 하니 그 분이 청소를 하고 계셨다.

 내가 불편한 것도 있고, 이유를 알 법한 부끄러움 등등의 여러가지 감정에 이끌려, 나는 계단을 타고 내려가 3층 화장실을 이용하러 이동하였다. 이 때는 다행히 복통이 많이 사라진 이후라 아침에 제대로 샤워도 하지 못했기에 찝찝했던 세수를 하러 세면도구를 들고 간 참이었다.

 그래서 클랜징 크림을 얼굴에 바르고 이제 세면대의 수도를 틀어 물을 몇 번 손으로 받아 얼굴을 씻고 있을 찰나, 청소하시는 그 분이 들어왔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던진다. "여기까지 와서 화장실을 쓰나" 결국 이번에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평소라면 "네"라고 넘어갈 법했으나, 몇 번의 경험과 핀잔, 짜증을 듣고 나니 나도 화가 났던 것이다.

 10시간도 지나지 않았지만, 기억에 의존하여 대화를 재구성 해보았다.

나: (대충 얼굴을 마저 물로 헹구고) "뭐라구요?"

청소하시는 분: "아니 여기까지 와서 화장실을 쓰냐고"

이하는 나-청소하시는 분의 대화를 주고받으며 진행된 것이다.

"제가 여기 화장실 쓰면 안되는건가요?"

"4층에 화장실 있는데 왜 여기까지 와서 그러냐는 거지"

"청소하고 계시길레 일부러 번거롭게 안하려고 내려와서 쓰는 겁니다"

"그럼 기다렸다가 쓰면 되지" (첫 번쨰 분노)

나 :"제가 청소 마치는 걸 기다려서 4층을 써야만 합니까?, 3층의 화장실은 쓰면 안된다는 규정이라도 있습니까? 제가 왜 기다려가면서까지 4층을 쓸 이유가 없는데 참 이해할 수 없습니다"

청소하시는 분 : "내가 실무자니까 그냥 이야기를 한 건데 뭘 그리 짜증을 내냐" (두 번째 분노)

나: "저번에도 말을 안했는데 사람이 화장실을 쓰고 있는데 걸레를 문 밑으로 넣어서 불편하게 만들고, 물이 튀어있다는 걸로 다 들리게 짜증을 내고, 그런데 기껏 청소하시는데 방해될까봐 3층 내려와서 화장실 썼더니 이젠 또 핀잔입니까? 아무리 실무자라지만 이건 무슨 갑질도 아니고 제가 어디까지 눈치를 보면서 화장실 써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청소하시는 분: "좋게좋게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왜 그렇게 화를 내나"

나: "당장 화장실 쓰고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와서 청소하시는 것도 이게 맞나 싶습니다. 저번에도 한 번 말씀드렸잖습니까, 소변보고 있는데 옆에서 청소하시는게 참 부담스럽다고, 그런 건 기억도 안나시고 이제 별 것도 아닌걸로 화를 내니까 이건 또 제가 이상한 놈처럼 보이시나 봅니다"

청소하시는 분:"그래그래 내가 잘못했어, 나쁜 뜻으로 한 건 아냐"

나: "이왕 말을 시작한 거 속풀이는 다 해야겠습니다. 이건 정말 아닙니다. 아무리 실무자라하지만 그래도 건물 이용하는 사람한테 이해도 못할 말로 통제를 하는 건 못받아들이겠구요. 사람이 볼일 볼 때 지난번처럼 또 걸레가 문 밑으로 들어오거나 다 들리게 짜증을 내시거나 하면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싶습니다:

이정도 까지 하니 대충 마무리가 되었다.

나도 평온함을 찾고 싶다. 정말로.

 

 다른 사람에게 아직 보여주지 않았기에, 위의 대화가 어떻게 이해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위와 비슷한 식의 대사를 언급했고, 두 눈을 부릅뜨고 상대방을 처다봤으며 적지 않은 음량으로 이야기했다. 예의라고는 욕을 하지 않은 것과 그나마 존대를 하였던 것 이외에는 지킨 것이 없다. 나도 충분히 무례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 이야기가 어떻게 전달된 것인지는 몰라도, 마무리는 나쁘지 않았다. 청소하시는 분도 알겠다고 미안하다고 했고, 나도 이만큼 속풀이 했으니 저도 이전 일은 다 잊어먹을거라고 했다. 그러고 나니 그 분이 내 등을 두들겼고, 나는 양치를 하고 독서실로 돌아갔다.

 지금의 내 기분은 싸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냥 속에 있는 이야기를 다 하고 나니 뭔가 후련함이 더 크다. 위에 언급한 대화는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여하간, 나는 오늘의 경험을 통해서 크게 느낀 것이 있었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돌려서 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리고 초기에 바로바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크게 터지지 않는 방법이라는 것.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물론, 이렇게 말을 했을 때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갈등을 최소화하면서도 솔직하게 말을 하는 연습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했음에도 상대가 이해하지 않고 분노만 느낀다면, 그 인간관계는 거기까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위험성이 있지만, 마음의 응어리가 계속해서 쌓여간다면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는 데 지금은 무게를 두고 싶다. 그래서 응어리지기 전에, 자꾸만 솔직하게 말을 함으로써 마음의 풍선에 차오르는 바람을 뺄 것이다.

그래도 꽤 후련하다. 

20.7.11.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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