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가 오는 날이면 은근히 기다려지는 것이 있다. 그것은 비가 그친 후 찾아오는 하늘 빛이 약간 어두스름한 저녁 때의 분위기다. 이유를 잘 모르지만 무언가 평소보다 조금은 더 보랏빛으로 보이는 밤하늘과, 비가 그치고 난 뒤에만 느껴지는 공기에 담긴 물냄새, 그리고 시원하면서도 따뜻함이 약간 감도는 밤바람. 나는 비가 그치면 이 순간을 기다리곤 한다.
동시에 비 내린 후의 분위기는 내가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이유를 잊어버리게 된다면, 다시금 목표를 상기시켜주는 수단이 되기도 할 것이다. 어릴 적 부모님이 이 시간대에 함께 데려가 주셨던 밤의 드라이브는, 그 순간 라디오에서 어떤 음악이 나왔는지, 드라이브 스루에서 내가 먹었던 소프트 아이스크림의 맛까지도 생각나게 해주는 추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뭔가 이룬다는 것을 해내게 된다면, 나의 추억 일부분이 되어버린 이 드라이브를 다시 하고 싶다.
이처럼 나의 추억은 비라는 것을 매개로 아지랑이처럼 머리에서 피어오르곤 한다. 그리고 이런 감정이 솟아오른다는 것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어, 비가 그치면 가벼운 마음으로 밤거리를 산책하곤 한다.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내 눈에는 새로운 풍경이 담기고, 그 풍경들이 나로 하여금 또 다른 추억을 떠올리게끔 도와준다. 이 순간순간이 즐거울 따름이다.

다들 좋은 삶, 의미있는 삶을 살고자 노력한다. 나도 그렇고, 그런데 어떻게 살아야 내 삶이 좋은 것이고 의미있어지는 지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참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결국은 각자가 자신에게 어울리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에겐 맞지 않더라도 나에겐 참 잘 들어맞는 것. 그러한 것들이 시간이 지나며 쌓여간다면, 그것을 추억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어떤 레퍼토리의 축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나의 경우, 내가 나름대로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이 바로 이처럼 과거의 즐거웠던 추억이 떠오를 때다. 물론 좋은 일만 있었던 나날은 아니었다. 고통도 있었고, 과거의 아픔이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것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동시에 나에겐 좋았던 기억들도 추억으로 남아있다. 단지 내가 그 부분에 대해서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일 뿐이다.
하지만 비 내리고 그친 뒤 밤바람이 공기를 타고 내 코에 전해졌을 때처럼, 어떤 계기가 작동하면 내 안에 존재하고 있었지만 종종 잊어버리고 있었던 추억들이 방울방울 떠오른다. 그리고 몇 분간이나마 추억들을 다시금 되새기며, 그 당시의 즐거웠던 경험들을 떠올려본다. 귀에서 좋아하는 음악이 흐르고 있다면 이 과정은 더욱 생생해진다. 잠시간 떠오르는 추억들을 상상한 뒤, 다시 고개를 들어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을 마주보니, 왠지 조금 전보다는 더 세상이 좋아보인다.
내 추억이 지금의 나의 삶을 더 풍요롭게,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준 것일까? 아무튼 좋다. 그래서 추억이라는 것들이 많을수록 내 삶이 즐거워진다고 생각하는거구나 싶다.
20.7.12.일
'나의 생각을 담는 곳 > 하루 한 번의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커피를 마시며 일상을 가다듬다. (0) | 2020.07.14 |
---|---|
비가오나, 눈이오나, 일상유지. 그것이 나의 장점. (0) | 2020.07.13 |
응어리는 말로 풀어내기. 그래야 해결된다.(2/2) (0) | 2020.07.11 |
응어리는 말로 풀어내기. 그래야 해결된다.(1/2) (0) | 2020.07.11 |
죽음으로 해결되는 것은 없다. 멈출 뿐이다. (1) | 2020.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