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하나에 사람 여럿, 생각도 여럿

 

 앞서 몇몇 글에서 '대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강조했던 사실은 대화란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함께 있을 때 성립되는 행위라는 것. 그러나 대부분이 '말하는 이'의 역할을 하고 싶어하기에, '듣는 이'가 될 수 있도록 나름대로 노력해보는 것은 가치있는 일이다. 이런 이야기를 몇 번 했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에서 조금 더 연장된다. 소위 '가르쳐준다'는 것에 너무 큰 가치를 두지 말라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즉, 뭔가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겠다 싶은 것이 떠오르더라도, 그런 것을 '반드시'내가 나서서 알려주어야만 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것. 어쩌면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경우도 많다는 것.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 생각에 정말로 많은 인간관계에서의 갈등은 이 지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뭔가 가르쳐주거나 알려준다는 것은 어떤 감정에서 비롯되는 것일 텐데, 이 때의 감정에는 긍정과 부정적인 것이 혼재한다. 정말로 좋은 뜻에서 알려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자신이 더 많이 안다는 우월감과 내 생각이 틀림없다는 믿음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원인이 어떻든, 핵심은 뭔가를 가르쳐줌으로써 상대방에 대하여 '기대'를 가진다는 것이다.

인생에는 하나의 길만 있는 것도 아닌데, 어찌 하나만 가르쳐줄려고 하는지.

 

 내가 애써 상대를 위해 뭔가를 알려 줬는데, '감히' 상대방이 나의 이야기를 반박하거나 귀기울여 듣지 않았을 때, 화자는 곧 실망감을 느낀다. 여기까지만 가면 차라리 다행이다. 실망은 이내 분노로 바뀐다.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증오로 이어질 수도 있다. 참 신기한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분명 처음엔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이, 원수사이가 되는 결과를 가져왔으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이런 결과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내 생각에 방법은 2가지다. 첫 쨰는 무슨 말을 하더라도, 상대방의 반응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나 자신부터 어떤 종류의 기대를 가지지 않는 것에서 가능하며, 나아가서 상대의 행동이 바뀔 것을 기대하여 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내가 말을 하고 싶은 욕구가 커져서 한 행동이라는 것을 인식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 감정의 발발원인은 온전히 내가 될 것이며, 나의 욕망으로 말을 꺼내었으니 그걸 상대방이 '들어주는' 것에 역으로 감사함을 느껴야 한다. 그렇기에 기왕 꺼낸 말이라면 정중하고 예의를 갖출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결코 쉽지 않다.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두 번째 방법이다.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사람이 물어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당신의 눈에 커다랗게 보이는 단점이라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그렇게 보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분명 다른 누군가가 말하고 싶은 욕망을 참지 못하고 말을 할 것이다. 그러면 된 것이다. 꼭 내가 말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믿고 있다면 그것은 일종의 오만에 가깝다.

 다른 말로는 자의식이 지나치게 과잉되었다고도 한다.

 

20.7.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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