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에 맞는 풍경이란 무엇인가.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이를 '생각의 전달'이라고 정의한다. 대화를 함으로써 나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전하고, 그에 따라 돌아오는 상대방의 생각을 들어 보는 과정을 반복하며 서로의 생각을 알아가는 과정,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대화이자 동시에 대화를 하는 이유가 된다. 여기에는 몇 가지 함의가 담겨 있다.

 첫 번째로 대화가 성립하기 위해선 말 하는 사람과 [들어주는 사람]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말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양 측이 모두 말 하는 사람이 되어선 대화가 성립될 수가 없다. 그렇기에 대화라는 주제에 대하여 내가 강조하는 것이 바로 [들어주는 사람]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대화가 곧 승패의 과정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더 똑똑하다는 생각으로, 혹은 어떤 진리를 알고 있다는 데서 스스로 느끼는 사명감에 기인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의 생각에 따르게 설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언젠가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가게의 사장님이 해주셨던 말이 아직도 깊이 남아 있는데, 그 분의 말씀은 다음과 같았다. 

[대화는 뜻만 통하면 된다. 따라서 형식(말)은 최대한 정중할수록 나쁠 것이 없다]

 뜻이 통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이해를 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내 말을 듣고 설득당할 필요도, 그대로 따르도록 만들 필요도 없다.

책과 꽃의 공통점은 아름다우면서 뾰족한 부분이 있다는 것

 

 세 번째 생각은 앞의 이야기에서 조금 더 이어진다. 그것은 대화란 뜻이 통하면 충분하다는 것에서 출발하는데, 이 말은 곧 내가 말한 것을 상대가 이해하지 못할 때, 즉 내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남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말을 잘 한다고 생각했고, 내 생각을 전달하기에 적당한 수준으로 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믿음 뒤에 내 마음에 있었던 또 하나의 믿음은 상대방에 대한 불신과 지나친 자기 확신이었다. 나에 대한 장점과 한계에 대해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에 멈추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으로 대하지 못했다.

  그래서 대화를 하면서도 갈등이 생기기도 했고, 그럴 때마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너무나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내가 잘못되었거나 상대방이 잘못되었거나,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인식을 하면서도, 찾더라도 적용할 수 없는 해결방안에 대해서만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진정한 해결 방법은 말을 줄이는 것이라는 것. 그리고 가급적이면 상대의 말을 부정하기에 앞서 그냥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들어주는 것. 그것을 이해하는 데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따뜻하되 솔직하게,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담백하게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대화의 이상향이기도 하다.

 나는 언제쯤 그런 대화를 할 수 있게 될까.

20.6.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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