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무언, 뭔가 떠오르지가 않는 날이 있다.

 

 나의 하루는 글쓰기로 시작한다. 그런데 오늘따라 유독 무슨 말을 써야할지 떠오르지가 않는다. 고민이다. 약속을 깨고 그냥 넘어갈 것인가, 거짓이라도 지어내서 소설같은 문장이라고 끄적여야 하는 것인가. 아니, 이런 것조차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예 백지 상태인 것이다. 지금 내가 적은 2줄은 마치 의식의 흐름, 자동기술법. 생각나는대로 적고 있다.

 그러나 핵심은 역시 [일단 쓰고 보자]에 있었다. 쓰다보니 생각이 떠오른다. 그렇다.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나로 하여금 생각을 끌어오는 일종의 기폭제인 것이다. 답은 나왔다.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멈추거나,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그럴수록 오히려 더 하려고 해야한다는 것. 그렇게 일단 시작을 하면 그 다음은 어떻게든 된다. 이걸 믿어야 한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완벽'에 대한 집착이 있다. 뭔가 일이 잘 될 것 같은 확신이 들어야만, 내가 잘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야만 해낼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여건이 마련되지 않으면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마치 여우가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의 나무에 열린 포도를 보고, 지레짐작으로 저 포도는 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저 멍하게만 있으면 아무것도 안됩니다.

 

 혹시 관심이 생긴다면 '완벽'이라는 한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유래를 찾아보길 권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100% 결점없는 그런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완벽의 구슬은 결점이 있었기에 누군가의 생명을 구한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완벽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있지도 않은 것을 바라고 살면 공허할 뿐이다.

 일단 하자. 생각이 안나고, 뭘 해야할지도 모르겠다면,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이조차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 하다못해 몸이라도 움직이자. 근육이 일을 시작하고, 시야에 새로운 것들이 담기게 되면 우리의 생각도 변하게 된다. 그러면 떠오르는 생각들이 우리로 하여금 지금 뭘 해야할지 알려줄 것이다. 그 과정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몸이 고장난 경우를 제외하고는, 슬럼프라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만들어낸 환상일지도 모르겠다. 즉, 마음먹기에 따라서 별로인 하루를 끝내주는 멋진 날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시작에는 '일단 뭐라도 좋으니, 해보자'고 마음을 가지는 데 있다. 할 수 있다. 그것만 믿으면 그 다음엔 어떻게든 된다.

 이것 봐라, 나 정말 오늘 한 줄도 못쓸거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이만큼이나 글을 적어내지 않았는가.

 

20.6.24.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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