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는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않았기에 가치있다.

 

 귀가 얇다는 말로 설명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유행에 민감하다. 남들에게 인기있어 보이는 것들은 즉시 경험해본다. 그리고 나름대로 평가하고, 자신의 감상을 알린다. 그 과정에서 나름대로 만족감을 얻는다. 반대의 현상도 일어난다. 누가 자신에 대해서 사소하게라도  평가를 하면 그 평가에 온종일 신경이 곤두선다. 나쁜 평가든 좋은 평가든 상관없다.

 다른 사람의 한마디에, 광고에, 인스타그램에 누군가가 쓴 한 문장의 글에 자신의 인생이 빼앗기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 반대로 자신이 세상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는 것이라고 믿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세상의 변화에 맞춰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거나, 자신이 생각해낸 것을 다른 이들에게 전파해서 성공한 적은 없다. 자신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창작물을 전파하는 수단이자 도구였을 뿐이다. 

 유혹을 당해서이든, 설득을 당해서이든, 무슨 이유이던지 간에, 자신이 스스로 선택해서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은 더 할말은 없다. 어찌되었던 본인의 선택이고, 그 과정에서 나름대로 만족감을 느낀다면, 내가 모르는 부분에서 또 즐거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걱정하는 경우는 정작 자신은 가만히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주변으로부터 뭔가 '너는 지금 잘 못살고 있는거야'라는 평판을 듣게 되는 것이다. 이 상황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아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유모를 잘못한 것같은 죄책감을 느끼고, 심지어는 이런 허상뿐인 평판으로 실제 내 평판이 나빠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미친세상에 대처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개무시다.

베네치아는 자기만의 색을 유지했기에, 지금의 명성을 얻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할수록, 자기 자신의 깊은 곳에 어떤 욕망이 있는지, 그걸 관찰해야한다. 그리고 연구하라.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욕망만이 진정으로 내가 추구해야할 가치라는 생각을 해야한다. 깊고 깊은 내면과의 대화가 이어질수록,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한들, 온갖 광고와 매체에서 나를 유혹하든, 나의 중심은 흔들리지 않는다. 태풍의 눈과 같은 상태.

 예를 들면 이렇다. 눈을 감고 생각을 시작한다. 머릿속 질문은 오직 하나. '나는 뭘 하고 싶지?' 몇 가지가 떠오른다. 그 중에서 제일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본다. 음악, 악기연주가 계속해서 머리에 남는다. 악기연주라...그렇다면 어떤 악기를 연주하고 싶지? 이런 생각을 하자 머리에서 내가 좋아했던 악기, 그 악기의 연주 영상이 동영상처럼 몇 초간 보인다. 아, 토미 엠마뉴엘이 몸바사를 연주하는 모습이 정말 멋있던데, 나도 그렇게 연주하고 싶다... 여기까지 오면 욕망은 찾았다.

 그래, 기타를 연주하는 것이 내 욕망이구나, 욕망을 발견했다면 거기서 고민을 더 지속하면 안된다. 이제는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기타를 구매하고, 강좌를 수강하던, 학원을 다니던, 자신의 삶을 욕망의 실현에 집중해야 한다. 다른 것은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이렇게 사는 것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삶'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거듭할수록, 자신의 욕망은 현실에서 발현되고, 그것들이 쌓이면 나를 나타내는 매력이 된다. 사람의 분위기가 바뀌게 된다. 계속 말하지만, 주변의 시선과 변화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유행의 복제품같은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자신만의 매력을 뿜어낼 수 있는 사람은, 그 자체로 신선하고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20.6.1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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