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품은 감정의 대부분은 대단치 않아

 

 이틀 전 방에 있던 컴퓨터가 고장이 났다고 한다. 내가 없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나 정황은 알지 못했다. 다만 컴퓨터가 고장이 났고, 그래서 부엌에 있는 컴퓨터를 가져다 하드디스크만 바꿔 끼웠는데, 뭔가 잘 안된다는 메모만 책상에 남겨져 있었다. 조금 조작을 해보니, 드라이버 충돌로 인한 호환성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기존의 컴퓨터가 어떤 문제인지 궁금해서 알아보고 싶었는데, 컴퓨터가 보이지 않았다. 이 때부터 아마도 기존 컴퓨터가 고장이 났으니 컴퓨터가게에 버리고 왔을 것이란 추측은 들었다. 하지만 다들 자고 있는 시간대라 호환성 문제인 듯하니, 부엌 컴퓨터의 하드에 기존에 쓰던 하드의 자료를 옮겨서 사용하되, 원래 쓰던 컴퓨터를 방에 두면 작업을 하겠다는 메모를 남기고 집을 나왔다.

 어제 돌아와보니 다시 메모가 있다. 역시나 추측대로였다. 문제는 해결되었고, 기존에 사용하던 컴퓨터 본체는 컴퓨터가게에 주고왔던 것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매우 분노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된 것인지 이젠 아무 감정이 들지 않았다. 이게 체념,달관의 감정인지, 이미 예상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라서 그런지 원인은 모르겠다.

 왜 아쉬움이 없겠는가, 그 컴퓨터는 내 생각에 메인보드 아니면 파워의 문제일 뿐이라서, 부품 하나만 바꿔 달면 작동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구매했던 컴퓨터이기도 하다. 중간중간 업그레이드를 많이 해서 초창깅의 모습은 많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처음 구매했던 2013년 경 무렵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대학교에서 주관한 인턴쉽으로 처음 받은 월급을 가지고 구매했던 컴퓨터다. 그 당시 그래픽카드를 구매했다가 뭔가 잘 안되 수리도 보내고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결국 처음에 애를 먹였던 그래픽카드는 7년을 견뎌주었다. 제대로 된 마무리도 못하고 떠나보낸 듯한 기분이 들어 씁쓸하다.

 더군다나 내 물건 아니겠는가, 가족이라지만 나의 물건을 마음대로 가져가서 처분하는 것은 불쾌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젠 더이상 화가 나지 않는다. 그게 참 신기해서 길게 글을 적게 되었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긴장이 되는 상황에서도 지금과 같은 마음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별일 아닌 것이다.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또 새로운 일이 발생한 것이다. 새로운 일이 항상 내 뜻대로 진행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걸 이제서야 조금은 받아들이게 된다. 이게 싫다면 내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서 일이 진행되는 방향을 틀어야만 한다. 그러기엔 지금은 힘이 나지 않는다. 그 뿐이다.

20.7.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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