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감있는 상대일수록 정중과 예의를..

 

 성폭력과 성희롱은 시대를 불문하고 지탄받아야할 나쁜 행위이고, 윤리라는 기준에서 보더라도, 인간이 하지 않을수록 더 좋은 행동이라고 불릴 것들이다. 여러 이유를 들 수 있지만, 성폭력, 성희롱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자유를 박탈당한다는 느낌을 주고, 동시에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이런 것들은 올바르지 않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성폭력, 성희롱에 대한 사실관계를 세상에 널리 알리는 미투 운동은 매우 용기있는 행동이자, 우리가 사는 사회를 조금 더 밝고 건강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데 나도 동의한다. 미투 운동이 더욱 일상화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점검하고, 성적인 희롱이 없이 건강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면, 그건 권장할만한 행동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하지만 2020년을 살아가는 지금, 미투운동은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미투운동 그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사회가 미투 운동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있어서 아직 미성숙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부작용이라고 볼 수 있는 지점이 군데군데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첫 번째 부작용은 여전히 곱지 않은 미투 고발자에 대한 시선이다. 이는 동시에 가해자에 대한 지나치게 관대한 정상참작이기도 하다. 즉, 미투 운동을 촉발시킨 고발자에 대해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뭔가 뜻한 바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이 복수의 심정으로 내지른 최후의 발악처럼 여기는 것처럼 느껴진다. 또는 미투 폭로의 사실이 고발자의 목소리를 그대로 반영해서 이해하지 않고, 좀 더 부풀려졌을 것이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힌 채 현상을 해석하려는 시도들이 자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는 피해자, 혹은 고발자가 차마 있는 사실을 그대로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심정을 겪었다는 것에 대한 이해는 불가할 것이다. 간단히 정리해서, 사람들이 너무나 보고 싶은대로 보고, 해석하려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부작용이 더 심각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미투라는 현상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나에게 돌아올 수 있는 피해만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데서 생기는 현상, 일종의 '펜스룰'이라고 불리는 단절이 더욱 확산된다는 것이다. 가령 여성이 피해자이자 미투 운동의 고발자라는 현상에 있어서, 이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남성들은 여성에 대한 배려와 공감을 통해 남녀가 더욱 건강한 인간관계를 구축해나가는 데 노력을 쏟기 보다는, 여성이라는 나와 다른 이성과의 접촉을 원천적으로 차단해버리는 방안을 강구하는데 노력한다. 이런 것들이 작게는 회식자리에서 남녀가 분리되어 착석하는 것 정도로 이루어지는 것이 될 것이고, 더 나아가면 사무실 자체의 분리, 그리고 부서의 분리, 보다 심화되면 여성을 고립시키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지게 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가장 심각한 부작용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단순한데, 만약 '이성에 대한 단절'을 통해 미투 현상이 벌어질 원인을 막아버리는 방식을 사용하게 되면, 이전까지 아무런 문제 없이 살아왔던 사람들조차 이해하지 못할 단절과 또다른 차별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가령 이번 시장 성추행 폭로 사건부터 생각해보면, 나의 추측일 뿐이지만, 앞으로 시청 공무원들은 회식 때 남녀가 섞여서 앉는 것조차 부담스럽게 느낄 것이고, 아무 문제가 없었던 대면보고 역시 이성간의 관계가 된다면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불편함을 감지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이 만약 '불편함' 그 자체로 남게 된다면, 사람의 심리 중 하나인 불편함을 없애려는 마음의 작동이 발동하여, 불편함의 근원적인 원인을 '이성 그 자체의 존재'로 규정지어버릴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내가 걱정하는 문제다. 이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다음 문제이기도 하다.

 

 이 문제는 해결 방법 자체를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것이 실천으로 이어지는 데에는 굉장히 어렵다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즉, 펜스룰을 주장하는 사람에게 '이거 또다른 차별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적을 뿐더러, 그런 말을 한 사람의 주장이 공감을 얻기 보다는 '이제 이것가지고도 시비거는 거냐, 그럼 어쩌란 것이냐'라는 비난을 듣게 될 가능성이 더욱 높다는 것이다. 사실 나도 용기없는 사람이라, 머릿속에 떠오르는 해결 방안이 하나 있지만,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을 뿐더러 이것이 올바른 해결 방안인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아, 아직은 글로 적기 어려운 처지다. 그만큼 명확한 해결방안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매우 원론적인 지점에서 접근한다면, 이런 이야기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각자가 모두 존중받아야할 '사람'이라는 것, 그래서 사람 간에는 평등하고 동등하게 존중해주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 그것을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동시에 그런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미투라는 현상이 벌어질 일 자체가 없어질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20.4.24.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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