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방식이던, 소통을 이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가만히 있으면 외로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집-독서실을 반복하는 삶 속에서, 대화를 한 번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것은 쉬운 일이다. 처음에는 이렇게 사는 것도 편했다. 그러나 외로움의 감정은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외로움의 감정은 계속해서 커져만 가고, 무언가 소통을 할 수 있는 상대가 필요했다.
비단 나만의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마음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가 필요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인사를 주고받으며, 가볍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대상은 늘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나도 그러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내 처지에 비추어 보았을 때, 누군가와 소통을 하기 위해서 긴 시간을 들일 수는 없었다.
이 말은 직접적인 소통을 하기 위해 사람을 대면하는 데 따르는 시간을 사용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아예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 마음에 있는 모든 생각을 현실화시킬 수 있을만큼의 만남을 이어갈 자신은 없었다. 그러나 소통은 하고 싶었기에, 나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내어 실현하였다.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인터넷에 소개된 멋진 글과 강연을 접하고, 작성자인 모 대학의 교수였던 분에게 장문의 메일을 보내고 답장을 받기도 했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 교수님의 다음 번 에세이에 내가 보낸 메일이 소개되었고, 내가 메일에 적었던 내용이 에세이 속에 담겨 아름다운 글 한 편이 되었던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 글은 교수님이 나에게 보낸 위로의 편지처럼 느껴졌다.
독서실에 새로 온 관리자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담배를 피우며 친분을 쌓았다. 그 덕에 점심시간이 즐거워졌고, 평소에 접하지 못했던 다양한 음료와 식사를 경험할 수 있었다. 또 대화를 나누며 동갑이지만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 나의 상식을 바꿔주는 생각의 흐름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덕에 많은 것을 배웠다.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겠다는 마음에, 국가기관에서 주관하는 교육을 열심히 신청하였고, 그 덕에 새로운 교육을 받을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교육을 받으며 내가 몰랐던 세게에 대해 더욱 자세하게 배울 수 있었고, 그 자체로서 나는 새로운 영역과의 소통을 시작하나는 기분을 느꼈다.
내가 좋은 결과를 얻었던 경험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알리자. 사람들은 그 과정에 대해 궁금해하였고, 나는 내가 아는 한에서 열심히 댓글을 달았다. 보잘 것 없는 나의 댓글에 감사하다는 말을 남겨주었고, 내가 더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분에게 정부 정책에 대한 질문을 드렸고, 그 분은 1시간 30분을 들여 동영상을 촬영해주시기도 하였다.
매일 소통하는 카톡방에선, 내가 아침마다 올리는 음악이 너무 좋다며, 감사하다는 연락을 주기도 했다. 이처럼, 나는 크고작은 소통을 하고 있었기에, 실제 삶에서 덜 외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입은 다물어진 채 살고 있지만, 손가락을 통해 매일 대화를 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러한 소통도 충분히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데 큰 역할을 해주고 있다.
어찌보면 내가 이 공간에 매일 한두편의 글을 올려두는 것도 소통일 수 있겠다. 아직은 많은 분들이 찾아주는 곳은 아니지만, 저장된 글이 사라지지 않는 한, 누군가가 이 글을 읽었을 때, 약간이나마 삶에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6.2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