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을 담는 곳/하루 한 번의 글쓰기

절실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그만 두기.

이소하 2020. 7. 16. 08:02

사람의 일이 오직 절실해야지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테다.

 

 자면서도 잠이 완전히 깬 것은 아니지만, 정신은 어느정도 돌아와있는 상태가 꽤 오랫동안 이어졌던 밤이었다. 그 이유는 기관지 때문인데, 흔히 숨을 쉴 때 '쎄엑쎄엑'거린다는 천식 증상이 나타나 숨을 쉬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원인은 오로지 하나다. 담배. 2015년 정말 천식이 온 줄만 알았던 그 떄의 끔찍한 경험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독서실에 도착한 지금도 머리엔 두통이, 목에는 가래가 고여 잔기침이 계속해서 난다. 그런 와중에 내가 오늘 쓰고자 하는 내용은 '절실함'이라는 것에 대한 부분이다. 이것은 내가 최근에야 생각을 정리한 것이기도 하고, 뭔가 일이 잘 안풀릴 때 유독 자주 생각나는 개념이라는 것도 오늘의 글 주제를 정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결론을 미리 말하자. 나는 절실하다는 것을 믿지 않으려 한다. 절실해지는 순간을 경험해야만 인간이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야만 무언가 얻어지는 것이 있다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생각에, 사람들은 절실하다는 의미와 간절하다는 의미를 혼동한다는 것 같다. 그 외에 여러가지 생각이 있지만, 하나씩 정리해보자.

절실하다고 얻어지는 사진이 아니야.

먼저 '절실하다'와 '간절하다'의 정의를 짚고 넘어가자. 사전의 표현일 뿐이므로 꼭 들어맞진 않는다.

출처는 네이버 국어사전이다.

절실하다 

느낌이나 생각이 뼈저리게 강렬한 상태에 있다.

매우 시급하고도 긴요한 상태에 있다. ([절박하다]와도 유사한 의미)

간절하다 

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하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하다.

 

 두 단어의 정의를 살펴보면, 비슷한 구석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한마디로 정리하면 '뭔가 하긴 해야한다는 생각이 확 들면서 애가 타는 마음상태'정도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기 때문에 나는 위의 단어가 성공이나 이루어냄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기도 하다. 무슨 말인가 하니,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도대체 '얼마만큼'절실해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것인가? 알 수 없다.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기준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절실함은 투입하는 시간에 비례한다고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럴듯하다. 솔직히 동의가 되는 부분도 있다. 가령 내가 7개월 째 매일 아침7시에 독서실에 와서 저녁 9시까지 있는 것은, 뭔가 이루고 싶은 것이 있으니까 그만큼 시간을 쓰는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것도 충분한 설명은 되지 않는다. 

 내가 하루에 쓰는 시간의 질을 따지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하루에 10시간을 독서실에 있는다 하더라도, 유튜브만 보고 있었다면,  해야할 일에 집중하지 않았다면 시간의 투입이라는 기준은 의미가 없어진다. 그러니 여기서 다시 절실과 간절의 개념을 끌어오게 된다. [시간을 투입하되, '간절하고 절실하게' 시간을 써야합니다]라고. 같은 말을 반복한다는 기분이 드는 것은 나뿐일까 싶다.

 따라서 우리는 성공의 기준을 절실함으로 설정해선 안된다. 사람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는 모호한 개념으로, 어쩌면 더 다양하고 모호한 성공이란 것을 측정하는 수단을 삼는 것은 이미 생각의 구조가 불완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내 말이 잘 이해가 안될 수 있다. 그것은 내가 글을 잘 못쓰는 것이 40%이고, 개념 자체가 모호한 것이 60%의 원인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성공이라는 것, 그리고 열심히 한다는 것에 대해서 자신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정의를 내려볼 필요가 있다. 

 나는 하나 가지고 있다. 이 것에 대한 설명은 다음 글에서 이어가려고 한다.

20.7.16.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