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을 담는 곳/하루 한 번의 글쓰기

게을러지면 꼭 불이익을 하나쯤은 받게 된다.

이소하 2020. 4. 21. 08:58

아늑한 공간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

 

 백수인 내가 그나마 사람구실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몇가지 구석이 있다. 그 중 하나는, 규칙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독서실에 가는 것. 그리고 정해진 시간에 점심을 먹고, 정해진 시간에 독서실을 나와 집으로 간다. 그리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래서인지 내가 선택하기에 따라선 매일이 주말같을 수도 있는 여건이지만, 나는 의외로 지금의 사는 방식이 직장생활을 할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종종 느낀다.

 

 하지만 역시 패널티가 눈에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사람은 쉽게 게을러진다는 것을 오늘도 경험할 수 있었다. 평소보다 몇 분이나 늦게 도착한 것일까, 내 생각에는 20분정도일 것이다. 그러보니 내가 늘 앉는 자리는 이미 만석이 되어있었다. 별 것 아닌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상황에서, 내가 많이 게을러졌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생각을 다시 해보니, 나는 이 독서실을 다니기 시작했던 게 19년 12월 18일부터였다. 이제 4개월이 넘은 셈이다. 처음의 기세는 정말이지 대단했다. 서울에서 큰 결심을하고 내려왔던터라, 하루라도 낭비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새벽 6시30분이면 독서실에 도착했던 것이다. 그런데 4개월이 지나고 나니, 처음의 결기는 다 사라지고 그 때와 비교해서 1시간이나 늦게 독서실에 도착해도, '그래 이정도면 충분하지'라는 안락한 마음에 사로잡힌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내가 오늘 한 번도 앉아본 적이 없는 자리에 앉아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정말 사소하지만 나는 일종의 불이익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나의 게으름에 대한 아주 작은 댓가를 하나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일종의 신호이기에, 만약 오늘을 계기로 나태해지고, 게을러지는 마음을 바로잡지 않으면 그 불이익은 점점 더 나쁜 쪽으로 모습을 바꾼 채 내 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 축구경기에서도 옐로카드를 받았을 때 조심하면 무사히 경기를 마칠 수 있지만, 옐로카드를 한 장 더 받게되어 퇴장을 당하면 자신의 기량을 무대에서 보여줄 기회조차 뺏기게 되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고, 나는 오늘의 내가 누렸던 게으름에 대한 반성을 되짚어본다.

 

 흔히들 '구라'가 많이 늘었다고 표현하는데, 이는 별 것 아닌 걸로 문장을 길게 풀어쓰는 잔재주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내가 오늘 쓴 이 글이 일종의 구라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정말 사소한 일, 그냥 평소보다 좀 더 늦게 독서실에 도착한 것으로 어쨌거나 별 무리없이 한두페이지의 글을 적을 수 있게된 것은, 살아온 구력이 완전 무쓸모하진 않았다는 생각도 들게하는, 이래저래 별 쓸모도 없는 재주이지만, 그래도 재주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는 생각도 드는 아침이다.

 

20.4.21.화